사도 금은산의 금은 생산은 니시미카와 사금산의 사금 광상, 쓰루시 은산, 아이카와 금은산의 광석 광상에 각각 맞도록 개발된 고도로 전문 분업화된 수공업에 의해 행해졌으며, 각각의 광산 기술과 생산 조직에 적응한 특징적인 광산 촌락이 형성되었습니다.
세 광산의 광산 기술과 생산 조직이 어떻게 촌락 구조에 반영되었는지 개념도에 나타나 있습니다.
촌락 구조
니시미카와 사금산 사사가와 촌락
니시미카와 사금산에서는 ‘오나가시 선별법’이라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독자적인 기술에 의해 채광과 선광이 이루어졌으며, 그룹별로 작업하는 사금산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각각의 그룹은 작업하는 사금산 근처의 채굴 터에 거주지를 마련하여 촌락이 형성되었습니다. ‘오나가시 선별법’에 사용된 기술과 촌락 구조는 에도시대 내내 큰 변화가 없었으며, 현재의 촌락에 남아 있는 반 편제 및 비정형적인 촌락 구조를 통해 에도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쓰루시 은산 쓰루시 아라마치 유적
쓰루시 은산에서는 광석 광상의 광산 개발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광산을 관리하는 쓰루시 지방관 저택이 은산과 가까운 경사면에 세워져, 주변에서 선광 및 제련 작업이 분업으로 행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촌락은 지방관 저택과 작업장 근처에 형성되었으며, 은산의 번영으로 인해 급증하는 인구에 대응하기 위해 거주 지역이 점차 확대되어 갔습니다. 그것은 일정하지 않은 형태의 테라스가 불규칙적으로 이어져 있으며, 촌락 내에 간선도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통해 나타나 있습니다.
아이카와 금은산 가미아이카와지구
아이카와 금은산의 초기 광산 촌락, 가미아이카와 지구에는 빨간색 선으로 표시된 계획화된 도로가 있었으며, 길 양측에 직사각형의 규칙적인 토지 구획이 조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지도에는 광산 경영자인 ‘야마시’의 이름이 붙어 있는 마을이 많은데, 광산 경영자가 많은 광산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 작업을 했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아이카와 금은산 아이카와카미마치 지구(에도시대 전기)
아이카와 금은산의 촌락 구조는 그 이후 봉행소의 정책에 따른 생산 기술 및 생산 조직의 변화에 맞추어 변천해 나갑니다.
에도시대 초기에 평지 끝부분에 사도 봉행소가 세워졌으며, 봉행소와 광산을 연결하는 빨간색 선으로 표시된 간선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간선도로 주변의 도로와 토지 구획에 의해 기능별로 마을이 구획되었으며, 오늘날로 이어지는 마을 구획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이카와 금은산 아이카와카미마치 지구(에도시대 중기)
그 이후 금은 생산 공장이 봉행소 부지 내로 집약되고, 봉행소 직영의 공장제 수공업이 확립되었으며, 에도시대 중기에는 무사 거주지와 공장의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기능별 마을 구획에서 직종이 혼합된 마을로 변화되었습니다.
아이카와 금은산 아이카와카미마치 지구(메이지시대)
메이지시대에는 광산의 관리 및 운영이 도쿠가와 막부에서 메이지 정부로 변경되었지만, 도로나 토지 구획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계 공업화에 따른 증산으로 인해 섬 외부에서 몰려든 광산 노동자들은 시가지에 새롭게 설치된 ‘헤야’라는 시설에 거주하였습니다.